현황: 중국 공세 앞 선진국의 전력 지원 경쟁

중국의 저가 공세로부터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 주요 선진국이 전기료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이 직접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방식과 달리, 각국은 재정 투입이나 장기 원가계약 등 간접 지원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특정 산업과 지역에 대한 특혜 논란을 차단하면서도 실질적 지원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정책 설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주요국 사례: 차등 전략으로 산업 경쟁력 확보

독일의 산업전력요금 제도

독일은 2024년부터 화학, 철강, 제지, 플라스틱 등 91개 에너지 집약 업종을 대상으로 '산업전력요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력 도매가의 일부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지난해까지 38억 유로(약 5조6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핵심은 선별 기준이다. 정부의 자의적 선택을 배제하고 유럽연합(EU)이 정의한 에너지 집약도와 무역 노출 정도를 객관적 잣대로 삼아 업종을 선정했다.

더욱 주목할 지점은 지원 조건이다. 지원받은 기업이 절약한 전기요금의 50%를 4년 내 탈탄소 설비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산업 고도화까지 연동시킨 설계다.

프랑스의 장기계약 모델

프랑스 국영 전력공사(EDF)는 원전의 전력 생산원가와 연동해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자국 기업을 지원한다. 기업이 얻는 요금 절감 이익이 지나치게 커지면 정부가 환수해 가계 부문을 지원함으로써 '산업계만 특혜를 본다'는 사회적 반발을 사전에 차단한다.

영국의 차등 보상 구조

영국은 산업용 요금을 프랑스와 독일의 두 배에서 낮춘 상태다. 에너지 집약도를 엄격히 따져 망 요금과 정책 비용의 최대 90%를 국가가 보상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일본의 효율 중심 감면

일본은 에너지 효율 개선 심사를 통과한 기업에만 재생에너지 부담금을 감면해준다. 재정 지원과 효율 개선을 연계한 형태다.

정책 설계의 전환: 요금 외 지원의 장점

각국이 직접 요금 인상을 억제하지 않고 재정이나 계약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차등 요금제는 시장 왜곡과 특혜 논란의 온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재정 지원이나 장기계약은 그 효과를 측정하고 조정하기 용이하며, 지원 조건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는 지원과 산업 고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보여준다. 단순히 비용을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절감분을 설비 재투자나 지역 이전 등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면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전망과 시사점: 정교한 설계의 필요성

전문가들은 "차등 요금을 둘러싼 갈등을 피하려면 요금 체계를 국가 전략 투자 차원에서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감면받은 전기료를 지방 이전, 탈탄소 설비 재투자, 첨단 설비 도입 등에 투입하도록 의무화해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국의 전기료 지원 논의가 단순한 요금 인상 억제를 넘어, 산업 구조 고도화와 지역 균형 발전까지 포괄하는 종합 전략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신호다. 각국의 사례는 선진국도 동일한 난제에 직면해 있으며, 그 해법이 요금 조정이 아닌 재정과 계약의 정교한 결합에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세계 선진국은 산업 경쟁력 보전을 위해 요금 외 지원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독일의 조건부 재정 지원, 프랑스의 원가 연동 장기계약, 영국의 차등 보상, 일본의 효율 기반 감면 등 각국의 모델은 특혜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한국도 단순 요금 인상 억제를 넘어 기업의 설비 재투자와 산업 고도화를 연계하는 정책 설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실행 단계
- 자국 에너지 집약 산업 분류 기준을 객관적으로 재정의하기
- 지원 조건으로 탈탄소·첨단 설비 재투자 의무화 검토하기
- 지원 규모와 기간을 명확히 설정해 정당성 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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