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드슨빌에서 역사적인 기공식이 열렸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함께 추진하는 전기로 기반 일관 제철소(HPLS, Hyundai Poongsan Louisiana Steel)가 본격적인 건설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총 58억 달러(약 7조 8207억원)의 대규모 투자가 투입되는 이 사업은 단순한 생산시설을 넘어, 글로벌 철강 산업의 구조 전환을 상징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기공식 뒤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아틀라스에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스페이스X 같은 로켓에도 이 철강을 공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단순 제철소 건설 소식을 넘어, 로봇·우주항공 분야까지 저탄소 강재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하다.
규모와 기술: 새로운 기준의 제철소
HPLS는 2029년 양산을 목표로 연간 270만톤의 강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 중 자동차강판 180만톤, 일반강판 90만톤으로 구성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생산 방식이다.
기존 고로식과 달리, HPLS는 철광석과 천연가스로 직접환원철(DRI, Direct Reduced Iron)을 먼저 생산한 뒤, 이를 철스크랩과 함께 전기로(EAF)에 투입하는 공정을 채택한다. 현대제철은 이 방식으로 당진제철소의 고로 쇳물 대비 탄소 배출량을 약 7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DRI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 기술인 만큼 도전해서 성공하면 다른 곳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경: 규제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이 투자의 배경에는 미국의 강화된 환경 규제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탈탄소 흐름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량에 현지 철강을 최대한 적용할 계획이며, 이는 공급망 현지화를 통한 비용 절감과 규제 리스크 완화를 동시에 노린 전략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가능한 많은 차종에 현지 철강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6개월 전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후 기공식까지 진행된 속도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됐음을 시사한다.
역할 확대: 자동차를 넘어 로봇·우주항공까지
현대는 HPLS 강재의 응용 분야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먼저 아틀라스(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에 저탄소 강재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의선 회장은 "아틀라스가 사람이 하기 힘든 부분을 대신하는 만큼, 어려운 작업에는 로봇을 투입해 사람의 안전을 보완하는 쪽으로 활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제철소 작업 현장 자체에도 아틀라스 투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제조업 안전성 강화와 인력 부족 대응이라는 이중의 목표를 지향한다. 다만 적용 시점·부품·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정의선 회장은 "충분한 테스트를 거쳐 적용 가능성을 판단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우주항공 분야는 더욱 원대한 비전이다. 로켓 재료의 엄격한 규격을 고려할 때, 저탄소 강재의 성능 입증이 필요하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현대제철은 우주항공 산업의 주요 공급자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망: 2029년부터 변화의 물결
기공식 직후 현대제철은 "공사를 안전하게 잘해서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조기 완성은 사치이고, 기술과 품질이 우선이라는 신호다.
관세 환경에 대해 정의선 회장은 "관세는 계속 바뀌고 있어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며 "관세에 연연하기보다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해 차량 품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단기 관세 감소 효과보다 장기 경쟁력 강화에 무게를 두는 태도는 이 사업이 전술적 투자가 아닌 전략적 포지셔닝임을 보여준다.
2029년 양산부터 연간 270만톤의 저탄소 강재 공급이 시작되면, 현대차·기아의 미국 생산 차량은 물론 로봇·우주항공 분야까지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전기동차·친환경 시장에서 원재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장기 전략의 핵심 축이다.
결론
HPLS 기공식은 미국 수입 현지화 전략의 정점이자, 현대자동차그룹의 탈탄소 시대 대응의 실질적 첫걸음이다. 탄소 70% 감축이라는 기술적 성과, 2029년부터의 본격적 공급, 그리고 아틀라스·우주항공까지 확대되는 응용 분야는 단순한 생산시설을 넘어 산업 생태계 재편의 신호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2029년 양산 일정 유지 여부: 건설 진행 상황과 기술 확보의 진척도 추적
- 저탄소 강재 성능 입증: 자동차·로봇·우주항공 분야 적용 시 통과해야 할 규격·인증 과정
- 공급망 다각화 효과: 현대차 미국 공장 차량의 경쟁력 강화가 실제 판매로 연결되는지 모니터링
정의선 회장의 "다른 곳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표현은 단순 희망이 아니다. 성공 시 글로벌 철강 산업의 저탄소 전환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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