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피지컬 AI와 LLM의 다른 경쟁 구도
지난 9월 7일 한국기계연구원이 개최한 '2026 글로벌 기계기술 포럼'에서 장병탁 서울대 교수(산업통상자원부 K-휴머노이드 연합 위원장)는 한 가지 핵심 주장을 던졌다. 우리나라가 거대언어모델(LLM)이나 텍스트·이미지 데이터 축적에서는 거의 30년 뒤쳐졌지만, 피지컬 AI는 아직 이제 시작 단계라는 평가다.
LLM 경쟁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전장을 지적한 것이다. 두 분야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판단이 그 배경이다.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의 주요 원천은 인터넷이지만, 피지컬 AI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제조 환경에서의 로봇 행동 데이터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이라는 사실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지점이다.
경쟁의 병목: 모델이 아닌 데이터
장병탁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피지컬 AI 시장에서의 실제 경쟁 구도를 명확히 했다. "경쟁력 병목은 모델(LLM)보다 좋은 행동 데이터에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평가가 아니라 시장 지배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데이터 플라이휠(반복 순환)이 로봇의 성능 격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로봇이 더 많은 행동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작업 능력이 높아지고, 더 나은 성능의 로봇이 또 더 우수한 데이터를 생성하는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두산로보틱스 김민표 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두산은 현재 협동로봇 단계에서 지능형 로봇을 거쳐 2028년 산업용 휴머노이드의 개념증명(PoC)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데이터 확보난"을 가장 큰 도전 과제로 지적했다. 또한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현실 간의 격차(Sim to Real Gap)도 넘어야 할 산이라고 명시했다.
한국의 위치: 제조 데이터의 강점
데이터 기반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다. 장병탁 교수는 "우리가 제조 데이터에 강점이 있는 만큼 데이터 팩토리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팩토리란 로봇의 행동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생성·정제하는 인프라를 의미한다.
현재 협동로봇 시장이 산업용 로봇 시장 대비 10대 1 규모라는 수치는 향후 변화의 크기를 암시한다. 두산은 "조만간 이 비율이 반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단순한 로봇 판매량 증가가 아니라 고급 지능형 로봇으로의 산업 전환을 의미한다.
전망: 데이터 주권이 산업 우위를 결정하는 시대
LLM 시대에 놓친 기회를 피지컬 AI에서 잡아야 한다는 장병탁 교수의 결론은 정책과 투자 우선순위를 바꾸는 신호다. 기계연이 공개한 한국형 AI 휴머노이드(V0.7) 4대의 시연도 같은 맥락이다. 각종 동작 수행(국민체조, 탈춤 등)은 기술 진전의 증거지만, 실제 산업 적용으로 가는 길은 충분한 행동 데이터 축적에 달려 있다.
두산로보틱스가 강조한 "좋은 데이터를 만드는 문제"는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제조 현장에서 로봇이 실제 수행하는 작업 과정을 데이터화하고, 그것을 재사용 가능한 형태로 정제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든다. 하지만 이 과정이 곧 한국의 제조업 강점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향후 피지컬 AI 산업에서 누가 우위를 점할지는 행동 데이터의 규모와 질이 결정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 팩토리 확충, 로봇과 제조 현장의 통합, 시뮬레이션 환경 개선이 한국이 집중해야 할 영역이다.
결론
현재 한국의 피지컬 AI 산업은 LLM 경쟁에서의 뒤처짐을 토대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지점에 있다. 다음 3가지가 실질적 행동 항목이다.
- 데이터 팩토리 투자 확대: 로봇 행동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정제하는 인프라 구축에 공공·민간 투자 결집
- 제조 현장의 데이터화: 기존 제조업 강점을 활용해 실제 작업 데이터를 로봇 학습용으로 변환하는 프로세스 개발
- Sim to Real Gap 해소: 시뮬레이션과 현실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병렬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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