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가 사람과 같은 작업 공간에서 안전하게 움직이도록 설계한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였다. 기존 휴머노이드가 안전 문제로 작업자와 분리된 구역에서만 운용돼야 했던 제약을 완화하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사람과 로봇이 함께 작업하는 환경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 제품이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15일(현지시간)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도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개발한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디지트 5(Digit 5)’를 공개했다.

이 로봇은 제조 및 물류 현장에서 더 다양하고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개발됐다. 장비에 자재를 적재하고 부품을 분류하는 것은 물론, 작업 순서에 따라 물품을 배치하거나 제품의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역할도 맡는다.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주로 단순 적재했던 기존 ‘디지트 4’와 달리, 디지트 5는 실제 생산 공정 전반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범용성을 강화했다.

신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협력형 안전’ 기능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AI 알고리즘과 고성능 센서로 주변 작업자의 위치를 실시간 파악하고, 사람이 다가오면 속도를 줄이거나 움직임을 멈춘다.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면 스스로 바닥에 앉아 모터를 정지함으로써 충돌 위험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로봇은 이동하거나 동작을 시작하기 전 시각적·청각적 신호를 보내 보행자에게 상황을 알린다. 이 같은 제어 과정은 소프트웨어 기반 안전 시스템으로 실시간 처리된다.

이 안전 시스템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현장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히는 핵심 요소다. 대니얼 디에즈 최고 사업책임자는 수백대의 로봇을 배치하면서 각 로봇마다 대형 투명 안전벽을 별도로 설치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된 기존 공장에서 로봇을 격리 구역 안에서만 운용해야 한다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업무가 크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제품 설계에는 실제 현장에서 수집한 운용 데이터와 고객 요구사항도 폭넓게 반영됐다. 조너선 허스트 공동 창립자는 고객사 현장에 디지트를 배치하며 확인한 요구사항을 제품 개발에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존 디지트의 특징이었던 뒤로 굽은 무릎 구조를 버리고 사람과 비슷한 다리 구조를 새롭게 채택했다. 이를 통해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쪼그려 앉는 작업에서 발생하는 힘을 높였다. 최대 적재 능력도 기존 35파운드(약 16kg)에서 50파운드(약 23kg)로 약 40% 늘었다.

연속 작업 능력과 확장성도 개선됐다. 배터리는 한 번 완충하면 약 90분간 사용할 수 있고, 충전에는 9분만 걸린다. 전력이 부족해지면 로봇이 스스로 충전 스테이션으로 이동한 뒤 등 부분의 충전 포트를 연결한다. 이 방식으로 하루 20시간 이상 연속 운용이 가능하다. 손은 작업 목적에 맞춰 교체할 수 있으며, 컨테이너 이송용 클로 그리퍼를 비롯해 패들, 집게, 다섯 손가락 형태의 인공 손 등을 선택해 장착할 수 있다.

어질리티는 현재 북미 9개 고객 시설에서 디지트 로봇을 운용하고 있으며, 누적 운용 시간은 6만5000시간을 넘어섰다. 독일 셰플러, GXO 로지스틱스, 토요타자동차 캐나다 생산법인 등이 주요 고객사로, 다년 계약 주문 규모는 3억달러에 이른다.

다만 아직 사업 실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2025년 순 매출은 180만달러였으며, 영업손실은 1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5년 운용을 기준으로 산정한 로봇 1대당 총비용은 기계 가격과 소프트웨어 유지보수를 포함해 40만달러(약 5억4600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현재 어질리티는 SPAC 합병을 통한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기업 가치는 25억달러로 평가받았다. 디지트 5는 북미에서 2027년 상반기부터 본격 공급되고, 유럽연합 및 영국에서는 같은 해 하반기부터 공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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