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가 AI 기업들의 몸값을 끌어올리자 월스트리트에서 잇따라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막대한 인프라 투자 비용에 비해 실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회의론이 월가를 압도하는 가운데, AI 거품이 꺼지면 미국과 세계 경제 전반에 시스템적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전면에 등장했다. 철도 붐이나 닷컴 버블을 넘어서는 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성과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월가의 냉랭한 분위기는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투자은행들이 초기 논의에서 거론한 기업 가치 2조달러를 두고, 대형 공모주 투자자들은 1조5000억달러 수준으로 크게 낮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수천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상장을 추진하는 AI 기업들의 몸값 거품을 월가가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는 AI 인프라 구축의 폭발적인 규모를 보여준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스틴 반 니우어버그 교수는 보고서에서 2025년부터 2032년까지 미국의 데이터 센터와 AI 인프라 누적 투자액이 10조3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연평균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63%에 해당하는 규모다. 과거 미국의 주요 인프라 사업인 1800년대 후반 철도 건설(연평균 GDP의 2.24%), 1950~1970년대 고속도로망 건설(1.10%), 1990년대 통신망 구축(0.66%)과 비교해도, 이보다 투자 비중이 큰 단일 인프라 프로젝트는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지출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PwC 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 센터 누적 지출은 2050년까지 30조달러를 넘어서 현재 미국 국채 발행액과 맞먹는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별로 보면 앤트로픽은 기업공개(IPO) 투자설명서에서 앞으로 몇 년간 518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25년 예상 매출의 100배가 넘는다. 팩트셋(FactSet)은 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주요 하이퍼스케일러 5곳의 자본 지출이 2029년까지 4년 동안 4조2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관건은 이 막대한 투자를 상쇄할 만큼의 수익과 생산성 증가가 가능한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반 니우어버그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미국 AI 부문이 투자 수익률 10%를 내려면 2032년까지 연간 3조5500억~3조7000억달러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연간 합산 매출 추정치가 현재 1000억달러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35배 이상 커져야 한다. 매년 8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JP모건도 AI 관련 기업 가치를 정당화하려면 향후 10년간 미국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이 3~5%에 이르러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기준 전망치는 1.75%에 그쳐 생산성 향상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은 자금 조달 구조에도 극도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 니우어버그 교수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특수목적법인(SPV)들의 불투명성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라며 “수요 불확실성, 급격한 기술 변화, 높은 부채 비율이 결합되어 기대치가 하향 조정될 경우 상당한 하방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다이앤 코일 교수도 “과거 혁신적인 기술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보통 10년에서 50년 정도가 걸렸다”라고 설명하며, 기업들의 재무 일정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형 AI 연구소의 경쟁력과 사업 모델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스페이스X 초기 투자자이자 미국 최대 규모의 기금 운용사 가운데 한 곳인 워싱턴대학교 기금의 스콧 윌슨 최고 투자책임자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1조 달러가 넘는 규모의 신흥 기업들은 그들이 감수해야 할 책임에 비해 가치가 없다”라며 오픈AI와 앤트로픽이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들은 모두 오픈소스로 적극적인 전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오픈라우터 데이터에서는 텍스트 모델 요청량 가운데 딥시크가 25.3%를 차지해 오픈AI(18.6%)와 앤트로픽(2.9%)을 앞서기도 했다.
반대로 최첨단 기술력과 대규모 인프라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오픈AI 초기 투자자인 비노드 코슬라 창업자는 윌슨 CIO의 견해를 두고 “그런 사람들은 어리석고, 모델만 공짜로 구하면 다 끝나는 문제로 본다”라고 일축했다. 오픈소스 모델은 소프트웨어 자체만 무료일 뿐 전기세와 서버값, 최적화 비용까지 고려하면 빅테크의 폐쇄형 서비스가 훨씬 가성비가 좋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인프라의 장기적 가치에는 동의하면서도 단기 위험을 두고는 시각 차를 보였다.
JP모건은 “인프라 구축이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면 기술 호황은 끝난다”며 단기 수익성과 금융 시스템에 미칠 충격을 경고했다. 코일 교수는 “향후 생산성을 뒷받침할 기반 시설만 갖춰진다면 괜찮다”며 당장의 적자보다 미래 인프라 주도권을 쥐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