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신형 그래픽 카드 300만개 이상을 주문했다. 첨단 AI 칩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성능은 비교적 낮지만 중국에 합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제품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다만 주문 규모가 엔비디아의 생산 능력을 크게 넘어 실제 공급량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20일(현지시간)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들 기업이 엔비디아 워크스테이션용 그래픽 카드 ‘RTX PRO 5500’을 모두 300만개 넘게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제품 한 개당 가격은 약 1만1400달러(약 1500만원)이며, 전체 계약 규모는 350억달러(약 46조원)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RTX PRO 5500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에서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쓰이는 최상위급 가속기와 달리 전문가용 컴퓨터를 겨냥한 제품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 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엔비디아 칩 중에서는 성능이 높은 축에 들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수출 규제에 따라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의 ‘B300’ 데이터센터 칩은 중국에 판매할 수 없고, 호퍼 아키텍처 기반 ‘H200’ 역시 개별 라이선스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낮더라도 칩을 확보해 AI 컴퓨팅 수요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급량이 관건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고객사와 파트너사에 주문 물량 전부를 공급하기 어렵다고 알렸다. 일부 고객은 요청량의 5~10%만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가 2027년 전 세계 RTX PRO 5500 생산량을 최대 300만개 정도로 잡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중국 기업들의 주문만 600만개를 넘기 때문에 공급 부족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기업들은 이 제품을 주로 AI 추론에 사용할 계획이다. 추론은 학습이 끝난 모델을 실행해 챗봇 답변을 생성하는 등의 작업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모델 훈련보다 컴퓨팅 부담이 작다. RTX PRO 5500은 엔비디아의 H200이나 B300보다 성능이 낮지만, 이런 용도에는 실용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번 주문은 미국의 제재에도 중국 시장에서 엔비디아 제품 수요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국의 수출 규제로 중국 AI 데이터센터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주문은 수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제품군을 중심으로 상당한 잠재 수요가 여전히 있음을 시사한다.

엔비디아 대변인은 워크스테이션용 칩과 그래픽 카드의 중국 내 생산업체들이 2022년 수출 규제가 처음 도입된 이후 “전례 없는 성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수출 규제와 중국 정부의 미국산 제품 수입 제한에 동시에 묶여 있다”며 “미국의 규제는 출시된 지 5년 가까이 된 구형 게이밍 그래픽카드까지 포함할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했다.

한편 중국에서 기존 대체 제품으로 꼽히던 ‘RTX 6000D’는 단종됐고, 현지 시장 가격도 두 배로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선전증시에 상장된 AI 컴퓨팅 기업 탄순 테크놀로지는 지난 10월13일 공시를 통해 공개되지 않은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RTX PRO 5500 2만개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공급 부족과 업계 수요, 해외 기술 규제에 따라 납품이 늦어지거나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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