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암호화 기업 프로톤(Proton)이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을 AI 중심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개발자가 직접 코드를 쓰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경영진이 AI 활용을 강하게 독려하자 보안 검증을 요구한 직원들과 마찰이 생겼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회사는 직원들의 AI 활용 능력을 재평가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404미디어는 29일(현지시간) 프로톤의 내부 메모와 슬랙 대화, 회의 녹음, 직원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회사의 AI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보도했다.

논란은 바트 버틀러 프로톤 CTO가 작성한 3페이지 분량의 내부 메모에서 비롯됐다. 그는 “당신의 업무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라며 “이제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LLM이 더 나은 코드를 더 빠르게 작성하도록 돕는 것이 당신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버틀러는 개발자 한 명이 여러 AI 모델과 에이전트를 이끄는 ‘팀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I를 단순한 코딩 보조 도구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소프트웨어 개발 절차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사람이 맡아온 코드 검토 업무도 대부분 AI로 대체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프로톤은 이미 개발 작업에 AI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404미디어가 입수한 내부 회의 녹음에서 버틀러는 지난 10월 회사 코드의 약 90%를 AI가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원들은 주로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틀러의 선언에 기술 업계 일부 인사들도 동조했다. AI 에이전트 ‘오픈클로’ 개발자이자 오픈AI 직원인 피터 스타인버거는 앞으로 2년간 AI 발전 속도가 현재의 절반 수준에 머물더라도 “기존 의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루비 온 레일즈(Ruby on Rails) 개발자인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한손도 AI 에이전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발자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톤 내부에서는 경영진이 AI 전환을 추진하는 방식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앤디 옌 프로톤 CEO는 직원들에게 AI 도입을 가로막는 요소를 직접 제보하도록 별도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회사가 그런 장애물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컴퓨터에는 AI가 작성한 코드의 양을 추적하는 소프트웨어도 설치됐다. 회사는 기존 방식으로 코딩하는 엔지니어보다 AI를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인력을 채용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직원들의 AI 활용 능력을 다시 평가하는 면담 계획은 고용 불안을 키웠다. 회사는 AI 사용 수준이 고용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했지만, 내부 반발과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지난달 30일 계획을 취소했다. 다만 직원들에 따르면 AI 활용 수준을 정기 인사 평가에 반영하려는 방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보안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불거졌다. 내부 슬랙 대화에서 옌 CEO는 지난 8월 새로 작성한 코드를 배포하기 전에 며칠간 침투 테스트를 하자는 직원의 제안에 “그건 헛소리이자 패배자의 사고방식”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빠르면서도 안전하게 개발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라며 “어떻게 하면 더 느려질지를 생각하지 말고, 더 빨라지는 데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옌 CEO는 또 “모든 코드를 정성스럽게 직접 만들려는 태도를 멈추고 AI를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직원들은 이로 인해 보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조직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프로톤은 암호화 이메일과 클라우드 저장소, 비밀번호 관리자 등을 제공하며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기업인 만큼, 이 같은 갈등에 관심이 쏠렸다.

AI 전환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사업 성장을 둘러싼 압박도 있었다. 내부 문건은 개발 속도가 부족해 프로톤이 연간 반복 매출(ARR)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영진이 AI를 활용해 제품 개발을 가속하려는 이유 중 하나다.

논란이 확산되자 옌 CEO는 30일 전사 회의에서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일부 메시지는 다르게 전달했어야 했다며 개선을 약속했다. 다만 AI 도입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조직 개편 과정에서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직원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틀러 CTO도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보안이나 건전한 소프트웨어 설계 원칙을 포기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어 1일 기존 내부 메모를 공식 블로그에 공개하면서 “프로그래밍은 끝났지만, 엔지니어링과 전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AI가 코드를 작성하더라도 개발자의 경험과 판단력, 책임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논란은 AI 에이전트가 소프트웨어 개발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기업들이 마주한 갈등을 드러낸다. 특히 보안을 핵심 사업으로 삼는 기업에서 AI로 개발 속도를 높이는 일과 코드 검증, 직원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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